일본 주요 기업들이 AI를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닌 의사결정 과정의 핵심 구성원으로 도입하는 실험에 나서고 있다. 기린홀딩스는 AI 임원을 임명해 회의에 투입했고, SMBC 그룹은 AI CEO를 도입했다. 반면 미국은 신입·인턴 등 초급 직무를 AI가 대체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한국은 채용 전 과정에서 AI 활용이 확산되는 추세다.
기린홀딩스는 대표이사부터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사진=미드저니)
일본, 임원부터 파격적으로 교체
일본의 AI 활용은 의사결정 단계부터 시작된다. 기린홀딩스는 8월 초부터 자체 개발 AI ‘CoreMate’를 임원 자리에 앉혀 회의에 참여시켰다. 이 AI는 10년간의 회의록과 시장 데이터를 학습해 경영진이 놓친 인사이트를 제시하고 논쟁적 주제를 발굴해 토론을 촉진한다. 단순 업무 자동화가 아닌, 의사결정 파트너로서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금융권에서도 사례가 등장한다. SMBC 그룹과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기존 CEO의 발언과 강연 내용을 학습한 인공지능대표이사를 도입했다. 직원들은 실제 CEO와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진 AI에게 경영 상담을 요청할 수 있다. 그룹은 나아가 AI 전략 전담 위원을 선임하고, 싱가포르에 AI 벤처 기업을 세워 글로벌 확산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이러한 실험이 고령화와 인재 부족 문제, 그리고 합의 지향적 기업 문화와 맞물려 새로운 조직 운영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해석한다.
미국, 신입 사원부터 대체하는 AI 흐름
미국은 정반대다. 기업들은 AI를 신입·인턴 등 초급 직무 대체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로펌과 컨설팅 기업들은 AI가 자료 조사·계약서 초안 작성을 담당하는 ‘AI 인턴’을 도입했고, 골드만삭스는 A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Devin’을 고용해 초기 코딩 업무를 맡기고 있다. 여기에 듀오링고, 메타, 쇼피파이 등은 “AI 활용 없이는 채용 불가”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직원들의 AI 활용 능력을 필수 역량으로 규정하고 있다.
앤트로픽의 대표 다리오 아모데이는 향후 5년 안에 “진입 수준 사무직의 절반 가까이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과 포춘 등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인턴십과 신입 채용은 급감했으며, 일부 기업은 아예 채용 공고를 줄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는 청년 고용 감소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라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동계는 “AI가 경력 사다리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규제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 채용 현장에서 자리 잡는 AI
한국은 일본처럼 임원급에 AI를 투입하거나 미국처럼 신입을 대체하기보다는, 채용 과정 전반에 AI를 활용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조사에 따르면, AI 채용을 활용하는 국기업은 전체 258곳 가운데 41.1%로 나타났다. 공공부문보다는 민간부문에서 활용 비율이 높았으며, 업종별로는 건설업 69.2%, 제조업 54.3%, 금융·보험업 42.1%에서 활용이 활발했다. 반면 도매·소매업 27.8%, 운수·창고업 20.0%은 활용률이 낮았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10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이 46.9%, 1,000인 이상 대기업이 62.0%로 활용률이 높았다. 반면 30인 미만 소규모 기업은 25% 수준에 그쳐 인력 선발 과정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대기업일수록 AI 도입이 빠른 것으로 분석된다.
채용 단계별 활용도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조사 대상 106개 기업 중 필기전형 및 역량검사 단계에서 57.5%가 AI를 도입해 가장 높은 활용도를 보였고, 서류전형 41.5%, 면접 19.8% 순으로 나타났다. 기타 활용으로는 면접 일정 조율, 채용 후 인적사항 입력, 인재 검색, 적합 후보자 분류 등이 있었다.
대기업도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LG그룹은 신입 채용 과정에 AI 면접과 이력서 분석을 적용하고 있으며, 신한은행은 인지 능력과 성향 분석을 AI 기반으로 진행한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력서를 자동 검토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선발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AI 소프트웨어 개발기업 오케이토마토의 이영호 대표는 “일본은 AI를 임원급에 배치해 의사결정을 혁신하고, 미국은 신입 채용을 줄이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한국은 채용 전 과정에서 AI를 빠르게 도입해 효율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향후 글로벌 AI 경쟁은 국가 전략뿐 아니라, 기업의 인재 채용과 육성 과정에서 AI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